세인트 메리 대성당(St. Mary Cathedral) - 시드니에서 가장 큰 천주교 성당
세인트 메리 대성당은 시드니 하이드파크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뉴사우스웨일즈 주립미술관과 킹스크로스에 근접해 있습니다. 세인트 메리 대성당 앞 광장 끝에는 쿡 앤 필립파크(Cook & Phillip Park : 수영장, Gym, 실내농구코트 등)가 있어 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1820년 5월 2일 공식적인 첫 카톨릭 신부인 죤 테러와 필립 콜로니가 뉴사우스웨일주 식민지에 도착했고 1821년 10월 29일 총독 멕콰리의 주도 하에 세인트 메리 대성당이 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세인트 메리 성당의 건축을 맡은 건축가는 윌리엄 워델, 보조 건축가는 죤 페네시였습니다. 그 후 1835년 9월 13일 죤 베데 폴딩이 이곳의 첫 추기경으로 도착하였습니다.
1865년 6월 29일 세인트 메리 성당에 첫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이 흔적이 동쪽 외벽에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폴딩 대주교는1868년 12월 8일 이 성당을 위해 축복기도를 드렸고 세인트 메리 성당은 재건축에 들어갔습니다.
1882년 9월 8일, 시드니 제 2대 대주교 로져 베데 본은 현재의 성당 제단을 헌당하였고1913년 6월 8일 켈리 대주교가 멜번의 대주교 카랄과 함께 대성당 남쪽 끝의 마무리 돌을 올려놓게 되었습니다. 1928년 9월 2일, 세인트 메리 대성당은 현재의 모습으로 첫 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대주교가 6번 바뀌는 동안 대성당 안에 지하 납골장이 완성되었습니다.
세인트 메리 대성당 내부에 위치한 아이리쉬 세인츠의 예배당은 원래 오르간 연주를 위한 방이었지만 1901년 추기경 모란이 대주교 폴딩과 개척선교사 죤 테리, 다니엘 파워와 죤 멕엔크로에를 위한 지하 납골장으로 개조시켰고 그 또한 1911년에 이 곳에 묻혔습니다. 1946년 대주교 본의 유해가 영국으로부터 되돌아 온 후 모든 유해는 이 지하 납골실에 안치되었습니다.
세인트 메리 대성당은 웅장한 돔과 각종 스테인드글라스로 화려하게 장식된 실내장식으로 유명합니다. 하드멘 형제들에 의해 만들어진 스테인글라스들은 ‘주의 최고의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15가지의 로사리오(기도때 쓰는 묵주)의 신비와 호주성당의 역사, 성인 등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제단 뒤 북쪽 중앙 창문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 펼쳐져 있는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성 요셉, 수째雌?/SPAN>, 예수의 탄생, 사원의 헌정, 아기예수의 발견, 아담과 이브, 십자가에서의 예수의 고통, 가시관을 쓴 예수, 최후의 만찬, 예수의 무덤, 마리아, 선한 목자와 베드로, 성 마태, 성 요한, 성 마틴의 순회 등을 비롯한 성서의 이야기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북쪽 중앙 창문에서 동쪽으로는 성 테레사, 성 루크, 성 마크가 그려져 있으며
세례용 물통 위의 5개의 창문은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 콘스탄틴, 세례요한, 아나니아, 성 페트릭, 언스터의 왕 아인거스, 성 폴의 아테네에서의 설교, 요한계시록의 여인 마리아, 마리아의 탄생, 대천사, 십자가를 등에 진 예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 외에도 볼거리들이 많은데 대성당의 6개 제단 중 5개 제단은 뉴질랜드산 오아마루석을 사용하여 만들었으며 아이리쉬 세인츠의 제단은 이태리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대성당의 조각품들은 시드니 Pymont의 사암으로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공해와 기후변화로 인해 많이 손상되어져 긴급한 복구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 중 1885년 추기경 모란에 의해 만들어 진 예수님의 정열과 죽음을 묘사하는 14가지 시리즈를 그린 십자가의 성로가 인상적입니다.
세인트 메리의 종은 영국의 화이트체벨 주조장에서 주조된 14개의 종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매 주일과 특별한 날에만 종을 울립니다.
대성당 성가대는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회로 70명의 남자와 어린이로 구성되었으며 대제단 위의 트리포리움안에 있는 오르간은 2명의 오르가니스트가 동시에 연주를 한다고 합니다.